국내 벤처기업에 창업 초기에 합류한 중견 개발자 A씨. 그는 최근 글로벌 인터넷 기업인 B사에서 이직제의를 받았다. 보다 높은 연봉과 좋은 근로조건. 그리고 소위 ‘폼나는’ 사무실과 명함. A씨는이제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국내 벤처기업에선 1인 3역을 소화해가며 밤새 일하는 것이 익숙했지만 이제 B사에 가면 체계적인시스템 내에서 주어진 업무 위주로 일을 하면 될 것이다. 지금 회사에선 초기에 사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갖은 고생을 다했었지만, 글로벌 회사의 ‘브랜드 네임’ 과 ‘마케팅 비용 지원’을감안하면 이제 초기에 사용자를 모으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이 왜 한국에서 유독 고전하는가에 대해 ‘한국유저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을 테스트베드로만 생각한다’ 등‘상품’과 관련된 분석이 많지만, 필자는 상품보다는 ‘조직 및 구성원’과 관련된 이슈, 그중에서도 ‘집중력’을 언급하고 싶다.
집중력은 벤처회사가 큰 기업에 비해 우월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이다. 집중력은‘꼭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헝그리 정신’이라고 표현될 수도있고, ‘최소한 이 분야는 우리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이라고도할 수 있으며, ‘며칠 밤을 세서라도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이라고도할 수 있다. 일반 제조업과 달리 인터넷 사업은 이러한 구성원들의 ‘집중력’이 사업의 성공여부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MySpace, Facebook, YouTube, Flickr, SecondLife 등 최근 몇년간 명성을 떨친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의 성공요인도 집중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즉, ‘기술적 독보성’ 보다는 ‘한발 앞선 아이디어와 빠른/재치있는 실행력’ 이 이들 기업들의 성공열쇠였다. 사실 이들의 모델과 기술은 남들도금방 따라할 수 있는 모델이었고 (실제로 동일한 모델로 따라한 기업들이 많았다), 그러한 copier들과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집중했기때문이었다.
집중력을 글로벌 시각에서 해석해보자. 해외 시장에 기반이 없는 우리나라인터넷 기업들에게 한국 시장은 무조건 사수해야할 성지이지만,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에겐 그 정도는 아니다. (물론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진출한 것이긴 하겠지만). 따라서시장에 대한 집중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호주, 캐나다 등의 영어권 국가들에선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사실이다. 진출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같은 언어권/문화권이라는잇점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영국의 기업들도 미국 등의 영어권 국가로 진출할 수있는 옵션이 있기 때문에 ‘방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기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중국과 일본 혹은 스페인이나 브라질 등의 비영어권 국가들에서 Baidu나 Yahoo Japan(미국 야후와 별개회사다), Mixi, Orkut 등의 로컬 기업이 강세를 보이는 것 역시 이들 기업들의 내수시장에 대한 집중력과 무관하다고볼 수 없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조직의구성원과 리더가 ‘기업가’인가 ‘조직원’인가 역시 집중력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조직원’의 경우에도 본인의 커리어 관리, 성과급의 변동 등 성공을 해야만 하는 인센티브가 많이 있지만, 자신의모든 것을 걸고 있는 ‘기업가’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기업가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투자를 받고, 자신이 데려올 수있는 최고의 인재들을 데리고 왔다. 속된말로 망했을 경우 받는 타격이 그만큼 클 수 밖에 없고 집중력역시 커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필자는 상품의 현지화에 앞서 조직이 집중력을 가질 수 있는구조를 만드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구조는 ‘지사’나 ‘R&D센터’의 형태로선 절대 갖춰질 수 없다 (물론 그냥 R&D가 목표인 경우는 사업이 성공해야 하다는 것과 기본 방향성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상품개발 등에 최대한 재량권을 준다’가아니라 한국 비즈니스의 성공이 한국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일치하게 시스템과 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글로벌이 아니라 글로벌 할아버지가 진출해도큰 성공을 거두긴 힘들 것이다.
